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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

일기

chirisa 2008. 4. 1. 20:28


기나긴 역사 속에서 세상이 흉흉하다는 말이 돌지 않았던 때가 어디 있었겠냐마는... 요즘엔 그 흉흉함이 우리 집 문 밖까지 찾아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하게 느껴진다.
세상 모르던 나이의 안전불감증이 없어진 후로는 현관에 열쇠를 꼽고 돌리는 순간, 아니면 들어와 문을 닫아 거는 그 순간에 이런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숨어있던 누군가가 갑자기 들어닥친다면 별 수 없이 흉기에 찔리거나 둔기에 맞아 쓰러진 후 순순히 집을 내주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겠군.'
거기까지 생각했어도 곧 스스로에게 피해망상진단을 내리곤 했는데, 오늘은 문을 닫고 잠그는 그 순간에 갑자기 날 엄습하는 무언가를 느꼈다. 왜 그런거 말이야, 어두운 창고에서 뭔갈 찾다가 막 나오려는데 순간 등 뒤에 있는 어둠이 그냥 허공의 어둠이 아닐 것만 같다는 느낌에 뒷꽁무니가 견딜 수 없이 간질거려 겉으론 태연한 척 하며 나오고 있지만 사실은 체면이고 뭐고 출구까지 냅다 내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뭐 그런거.
조만간 나는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기 전에 위아래층에 누군가 숨어있진 않은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길지도 몰라.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다는 사실이 참 무섭다.
이제 정말 남일이 남일같지만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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