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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

소설의 영화화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chirisa 2008. 3. 12. 20:02

   영화 오만과 편견을 퍽 만족스럽게 보고는 왠지모를 의무감에 소설에도 냉큼 손을댔다. 우주여행 가이드도 읽다 말고(이제 4,5권 남았다!) 언니먼저 읽고 내려놓기 바쁘게.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일단은 영화에서 다 표현되지 않았던 세세한 정황이 설명되어 좋았고, 원작에서는 이러이러했는데 영화에서는 그렇게 표현했구나 라는 걸 발견하는 것도 재밌었다.

   내가 영화를 먼저 봐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원작을 영화화 하면서 재미나 감동이 마이너스 된 부분은 거의 없다고 느꼈다. (여기서 말하는 영화는 물론 조 라이트 감독의 2005년 작 「오만과 편견」이다.) 그래도 여기에 대해서는 아마도 이견이 많으리라. 원작을 먼저 읽은 친구가 말하길 영화를 보고 아주 실망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 그렇게 실망했는지 모르겠다는게 내 생각이다. 설사 내가 원작을 먼저 읽었다고 해도 -만족도가 조금 달라질 수는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아주 실망' 할 일은 전혀 없었을 거다. 아마도 소설의 영화화에 거는 기대의 종류와 그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겠거니 하지만,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이 조 라이트 감독의 '영화 오만과 편견'이 되었을 때 크게 실망하게 만들었을 그런 종류의 기대라면 그건 바람직하지 않은 기대라고 말하고 싶은게 또 내 의견이다. 이렇게 까지 말하는 이유는 나의 영화보는 눈이 아주 탁월하다고는 못하겠으나 적어도 아주 그지 같지는 않다고 믿고있으니까..?

   원작이 꽤 두꺼운 장편소설이므로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었던 압축된 줄거리가 크게 아쉬워 할만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이 부분 저 부분을 골라서 또 다른 새로운 장면으로 재구성한 것이 꽤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어떤 특정 대화나 만남, 사건들이 일어나는 상황을 원작과 다르게 설정한 것은 영화를 좀 더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한다. 보아하니 감독이 시각적 미학에 일가견이 있는 듯 하니, 그런 드라마틱한 장면장면들을 평이하게 넘길 수는 없었을 테지. 영화는 소설과는 달리 많은 부분을 시각에 의존하는 매체이니 말이다.

   그 밖에 이 영화가 원작의 가치를 훼손시켰다면 어떤 부분일까 계속 생각해 보지만 찬사를 날렸던 내가 그걸 제대로 찝어내기에는 무리가 있지.
   캐스팅이 불만이었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덧붙일 말이 없겠다. 소설을 읽으며 펼쳤던 상상의 나래가 영화의 시각화로 인해 절망스럽게 무너져내려 버렸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심심한 위로를 드릴 밖에. 하지만 그것도 배우들의 풍부한 연기력으로 충분히 커버가 되었을 거라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뭐 물론 여전히 이견이 많을테지만- 소설의 영화화에 대한 평가가 꼭 원작의 굴레에 메어있어야 하는 법은 없다는 말이다. 원작과 떼어놓고 봤을 때 그 영화 자체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굳이 원작과 이런 부분이 다르다 저런 부분이 다르다를 따져서 평가 절하시키려는 행동은 별 의미가 없다. 내가 보기에 그런 건 단지 원작에 대한 최초의 애착 때문에 영화라는 장르로 재해석되는 또 하나의 창작과정을 무시한 행동일 뿐이다.

   하지만 당연히 원작의 재해석이라는 것에는 정도가 있어야 하는 거겠고, 원작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에 대한 평가의 척도는 별 수 없이 원작이 될 것이므로 너그러이 만족하기는 역시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니, 얼마나 원작에 가깝게 만들었을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원작이 다른 사람의 손에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인가에 기대를 걸어 본다면 그 결과가 다소 실망스러웠더라도 좀 더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고 그게 원작을 옹호하는 데도 더 설득력을 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논리로도 변호할 수 없는 그야말로 원작의 가치를 훼손시킨 점이 너무나 명백하여 고소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어떤 것이 눈에 띄는 날이 오면 내 격분하여 포스팅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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