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로그

나홀로 돌자 동네 한 바퀴 본문

블로그같은 포스팅

나홀로 돌자 동네 한 바퀴

chirisa 2013. 3. 19. 04:28


입사원서 양식에 꼭 취미란이 있다. 자소서 다음으로 제일 곤란한 부분이지. 내가 얼마나 재미 없게 사는 인간인가 증명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암튼 여러 가지로 싫은 단어 취미(더 싫은 건 특기). 어쩌면 몇 년 후에는 거기다가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스쿠버다이빙이라던가 기타연주라던가 R/C라던가 뭐 그런걸 쓰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전히 영화감상 음악감상 따위를 쓸지도 모르고. 영화감상과 음악감상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다들 알지만 취미란에 쓰인 영화감상 음악감상이 얼마나 시시해보이는지도 다들 알겠지. 

취미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새삼스러울 정도로 명확해서 뭉클할 지경이다. 몇 가지 뜻이 있지만 내가 이해한 것은 이렇다. 즐거움을 취하는 행위.. 취미의 본질이 그러거나 말거나 입사원서 취미란에 쓰는 영화감상 음악감상은 역시 시시하다. 해서 오늘 여기 올릴 사진 정리를 하면서 다음부터는 산책이라고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똑같이 뻔하지만 뭐뭐감상 처럼 어정쩡한 명사가 아니라서 깔끔하고 글자수도 경제적이다. 대부분의 취미란은 칸이 굉장히 작거든. 그리고 쓰면서 든 생각인데 블로깅이라고 쓰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일단 좀 덜 뻔하고, 역시 명사고, 결정적으로 뭐뭐감상이나 산책을 결과물로 표현할 수 있는 행위니까 포괄적이야. oh 그러하다 oh















날씨가 제법 따뜻해진 3월 15일의 산책




목적 없이 이유도 없이 집 밖을 나돌아다니기 시작하는 백수 말기가 왔다. 

산으로 갈까 강으로 갈까 하다가 강으로 왔고 덕소로 갈까 팔당으로 갈까 하다가 덕소 쪽으로 향했다. 




















계속 강을 거닐까 덕소로 갈까 하다가 덕소 쪽으로 간다. 






같은 길에서 찍었던 2월 5일 사진을 찾아왔다. 

한달 보름 새 눈이 다 녹았다.




















개천 건너편에 왠 개 세마리


 개새... (ちがう)


















































도서관 쪽으로 나가는 오르막








위에랑 같은 길인데 위에서 바라본 거. 2월 5일에 이 길을 지나기 전 자빠질 각오를 단디하고 찍은 사진















마트와 도서관 사이를 지나고 찻길을 지나고 초등학교 뒷길을 따라 걷다가 그냥 골목 골목 길이 나오는 대로 걸었다.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게 됐을 때쯤 만난 나무 한 그루

















오랜 시간 마을의 중심이었을 법한 큰 나무. 푯말에 의하면 300년 된 나무라고 함. 




















걸으면서 나도 좀 찍어줌
















나무를 지나 시야에 들어온 곳은 마치 고물상 같았는데 이 자리가 어딘지 깨닫고 나서 조금 놀랐다. 여기가 어디냐면 예전에 덕소성당이 있던 자리였거든. 건물은 그대로 있는데 현 기능을 모르겠다. 

그나저나 고물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진으로 다시 보니 고물상이 아닐지도..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천주교덕소교회 간판. 어릴 때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고나서 몇 번은 갔었고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덕소성당은 조금 떨어진 곳에 신축이전함. 

















계속 걷다가 어떤 빌라 사이를 통해 나왔더니 익숙한 덕소초등학교 옆문길이다. 길이 이렇게 통하나 신기해하며 이 근처에 있던 친구의 악세사리 공방을 찾아 또 헤맸다. 










빌라촌을 헤매다 마주친 고양이 두 마리











확대샷. 좀 가까이 가보려고 딴 곳 쳐다보면서(ㅄ같았겠지) 몇 발 옮겼는데 자비없이 바로 샤샤샥 사라져버림.. 






















찾았다. 친구네 공방. 아예 처분한건지 아님 창고식으로 쓰고 있는건지.. 






















덕소초등학교 옆문으로 들어가봤다.











심하게 가을 같아보이지만 기분탓일걸..?











잠시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앉아서 느낀 것은 모교이지만 모교라는 느낌이 별로 없다.. 라는 것. 1년 반 밖에 다니지 않았으니 당연한건가. 페인트칠도 생소하고. 내가 있었던 5학년 9반과 6학년 4반이 건물 어디쯤에 위치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 운동장에 학원버스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하교길 아이들을 태워가던 풍경이 문득 떠오른다. 

박지윤의 하늘색 꿈이 내 초딩시절에 나왔었다. 유난히 이 노래가 생각난다. 집에가는 버스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으로 아주 상스러운 욕을 배웠던 것도 여기서였다. 

반에서 몇 등했는지를 공개적으로 알게됐다. 처음있는 일이었다. 

유행처럼 돌아가면서 왕따를 시켰다. 그러고도 종국에는 다같이 어울려 놀았다. 지금도 만나면 웃으면서 그 얘기를 한다. 그 와중에 나만 왕따를 안당했단다. 지금와서 내가 듣는 말은 "니가 젤 못된 년" 이다.ㅋㅋ 여기서 생길 수 있는 오해를 위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난 결코 주도자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난 못된 년인 것 같다. 

초딩시절 과거 회상이 못된 년으로 마무리돼도 되는건가..? 
















정문으로 나와 월문리 쪽으로 걸었다. 아직 비디오대여점이 남아있는 게 신기해서 찍어봤다. 이제 보니 이 건물.. 매우.. 

건물주가 굉장히 문화 예술 여가의 부흥을 꾀하는 마인드를 가진 게 아닐까..;





















덕소성당을 찾았다. 세번 째 방문. 고요한 예배실에 한참을 앉아 있었던 몇 년 전의 일이 굉장히 깊은 인상으로 남아서 종종 가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 처음의 그 날처럼 고민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찾아가지만.. 두번째 왔을 때는 앉아서 졸았고 세번째인 이 날은 밖에서 들려오는 송대관 네박자에 리듬탔다고 말모태..

성당에서 매번 판공성사표가 날라오는 걸 보면 난 아직 신자인 게 맞지만.. 만약.. 어느 존경하는 신부님의 강론이 매주 너무나 듣고싶어진다거나 혹은 사랑하는 베필이 너무나 간절히 나와 함께 일요일의 한 시간을 이 곳에서 보내길 바란다거나 그도 아니면 혹시나 내가 독거노인이 되었을 때 교회의 갸륵한 도움이 간절해진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성당에서 매주 미사를 드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한다능. 물론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요. 예.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