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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

지난 일기(2017년)

chirisa 2019. 6. 18. 14:35

구글 문서에 저장되어 있던 지난 일기를 발견했다.

그리 먼 과거도 아니지만 이런 게 저장되어있는 줄도 몰랐던 기록이다.

'이때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싶은 것도 있고, 혹은 '저때도 저런 생각들을 했었구나. 하지만 여전히..' 같은 것들

어쨌든 지나간 날들의 생각들을 들춰보는 건 꽤 재미있다.

 

 

 

 

 

 

 

 

 

어떤 조건에서도 일관되게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미덕. 혹은 능력? 뭐 그런 걸 갖추고 싶다고 늘 생각한다. ‘어떤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못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는 게 반복되다 보니 ‘왜 닥치고 그냥 하질 못 하나.’ 라는 생각이 자주 들기 때문이다.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그냥 행동하는 것. 영어로 완벽한 표현이 있지. Just do it.

 

하지만 나는 언제나 여건에 구애를 받는다. 대체로 사사로운 것들이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서 짬짬히 뭐라도 쓰고 싶은데 마땅한 도구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끄적이며 방황하다가 구글 문서를 이용하면서 이렇게 뭐라도 쓰게 되었다던가, 독서량이 1년에 한 두권 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독서와 거리가 먼 생활을 하던 나였는데 전자책 단말기를 구입하고 나서 1~2주에 한 권씩 읽고 있다던가, 잘 맞는 트레이닝 바지를 하나 사고 나서야 저녁 자전거 마실을 나가게 되었다던가 하는 것들이다.

 


 

막연하게 어찌어찌 될 것이라고 생각해온 것들이 결국은 현실이 되었다는 것은 어찌보면 감사할 일이고 어찌보면 무서운 일이다. 지금 나의 현실이 되어있는 것들은 대부분 ‘그렇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거나 ‘최소한 이것만은’ 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어째서 나는 가장 원하는 것을, 최선의 것을 불러오지 못하고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조건만을 현실로 만들어냈는가.

명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데도 항상 흐리멍텅하게 살고 있는 나는 또 얼마나 바보같은가.

 

이 바보같은 짓을 조금이라도 예측하거나, 혹은 피해가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하다. 지금 이 순간, 혹은 짧은 과거에 내가 가지고 있던 지배적인 생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무의미 할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되는대로 적어보기로 한다.

 

- 이래놓고 안적음

-

 


 

 

170309

 

글을 쓰고 싶다. 사진을 찍고 싶다. 살면서 그래도 뭔가 output이 있어야할 것 같은 막연한 욕구다. 식욕처럼 원초적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의 필수 욕구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 없이 사는 건 그냥.. 사회인으로서는 그냥 회사의 부품이고, 물리적으로는 그저 노화하고 있는 생물일 뿐이잖아.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이런 상태로 몇 년을 보내버린 것 같다. 사색없이, 발전 없이.

전문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새로운 시도는 더이상 없고, 익숙함과 편안함만 좆는..

이렇게 말한것 치고는 사실 최근 1년 사이 인생에 큰 변화가 있었다. 결혼과 임신이라는. 분명 빅 이벤트가 맞긴 한데, 그런걸 치르고도 이렇게 어제가 오늘같고 매일이 오늘의 답보같은 느낌속에 살고 있다는 건 역시나 뭔가 부재한 삶.

 

 


 

170313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고싶은지.

지금 당장 내게 무한정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할까? 지금 생각으로는 사실 살림을 잘 하고 싶다. 난 원래 체계적이고 정돈된 것을 선호하는 편이고 내 것의 경계가 분명하고 개인신변에 관한 것은 주도적인 편이라 남의 집에 얹혀 살며 무엇도 내 것이 아닌 상태로 지내는 건 내게 결코 기쁜 일이 될 수 없다.

지금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나는..

 


 

170314

 

일단은 가진것에 감사하는 게 먼저다. 불평 불만쟁이가 되기 전에 무조건 감사해야해. 사실 감사할 것은 무궁무진하다.

 

나의 내적갈등의 기저에 깔려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귀찮음 vs 의무감인 것 같다.

귀찮음. 귀찮음이란 녀석..




 

170315

 

뭔가 모르게 의욕이 반짝 하는 순간. 이걸 어떻게 놓치지 않고 잡고 있을 수 있을까..

 


 

170316

 

좀 더 많이 사색하고, 새로운 걸 계획하고, 기대에 차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런 걸 조금이나마 찾기위해 지금 생각난 건 또다시 List 만들기다. refresh 할 수 있는 것들이나, 버킷리스트 같은 것들을 줄지어 보는 것.

요즘 문득 대학시절이 그리워지는데 그 때를 생각하니 의욕적으로 뭔가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드네.

어디에도 별로 쓸모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그 시절을 회상해보고싶어졌다.

 

2005년 새내기가 되었다. 나름 신입생 OT도 갔다오고 이 사람 저 사람 얼굴도 익히고 했지만 첫 학기는 대체로 아웃사이더 처럼 지냈던 것 같다. 바롬교육 때문에 합숙도 했고 ej과 교양도 여럿 들었다.

싸이월드에 생각있는 척 하는 글이나 사진을 올리고 뒤늦은 성인사춘기(?)를 겪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입시까지는 그 어떤 상상력도 일탈도 없어야한다고 강요하는 교육을 받으며 살아온 평범한 애가 갑자기 주어진 자율과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 앞에 느낀 무력감과 회의.

“여대생” 같은 산뜻함은 전혀 걸치지 않았고 어두침침한 회색인간으로 지냈다. 나한테 그런게 어울린다고 한 순간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독립영화를 선호했고, 실속도 없이 서점이나 도서관에 들락거렸다.

해가 중천일 때 모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세상에서 제일 할 일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던 것 같다.

대학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를 놓은 적이 거의 없지만, 학교생활과 알바의 기억이 섞여있지는 않다. 어느 학기에 어떤 알바를 했는지, 수업 후 급하게 알바를 간 적이 있는지, 뭐 그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

결혼하고 짐 정리하면서 과거에 썼던 다이어리나 수첩을 많이 버렸는데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게 남아있으려나 모르겠다.

 


 

170316-2

 

결혼 금전계획은 자꾸만 늦어진다. 나의 주도성 부족과 오빠의 비협조성. 쳇.

 


 

170405

 

‘회사는 문제해결을 하는 곳이다’ 라는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문제해결이라..

실제로 회사생활을 막 시작했을때는 책임감이라는 게 가장 피부로 확 와닿았었다. 맡은 역할에 대한 나의 행위가 있고, 그 행위와 이어진 결과가 있고, 그게 기록으로 남는.

물론 책임자는 따로 있지만, 어떤 역할을 해내야한다는 게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170406

 

게으른 임산부 19주차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는 특별히 하지 않은채 시간만 흐르고 있다.

태교라 할만 한 일을 찾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도록 노력해야할 시기에 나는 매일 오로지 나에게만 속한 일상을 살아내느라 바쁘다.

최근 여러가지로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도 그렇고, 업무의 불합리함과 비효율을 해결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불만과 불안은 딱히 해소되지 않고…

이 와중에 ‘임신-출산-육아’와 나의 일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건지, 이렇다할 커리어도 없는 회사원 딱지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이런 잡다하고 공허한 상념들로 임신 초기를 유야무야 흘러보낸 것이다.

게다가 입덧도 전혀 없어서 일상이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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